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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9월 20일, 3·15 부정 선거의 단죄: 관련자 사형 언도

1961년 9월 20일,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중대한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군사 혁명 재판소는 3·15 부정 선거 사건의 핵심 관련자인 최인규, 이강학, 한희석 피고에게 사형을 언도했습니다. 이는 1960년 4·19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부정부패에 대해 국가가 공식적으로 정의의 심판을 내린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판결은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고, 새로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배경: 3·15 부정 선거와 4·19 혁명1960년 3월 15일,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및 제5대 부통령 선거는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해 노골적으로 조작되었습니다. 자유당은 유권자들을 협박하고, 투표함을 미리 채워놓거나(4할 사전 투표..

1981년 9월 19일,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역사: 신안 해저 유물 발굴 발표

1981년 9월 19일, 문화재 관리국은 신안 해저 유물 발굴 현장에서 6월 23일부터 8월 22일까지 두 달간 총 2,564점의 유물이 인양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1975년 신안 앞바다에서 우연히 발견된 이 보물선은 고려 시대와 중국 원나라 시대의 해상 교류를 증명하는 거대한 타임캡슐이었습니다. 이 발표는 바닷속에 잠들어 있던 천 년의 비밀이 하나둘씩 세상에 드러나고 있음을 알리는 중요한 소식이었습니다.배경: 신안 앞바다에 잠든 천 년의 비밀이야기는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라남도 신안군 앞바다에서 한 어부가 그물에 걸린 오래된 도자기를 발견하면서, 수백 년 동안 바닷속에 잠들어 있던 보물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배는 14세기에 침몰한 중국 원나라의 무역선으로, 중국, 고..

카테고리 없음 2025.09.19

2005년 9월 18일, 금융산업의 지각변동: 수수료 수익 10조 원 시대 개막

2005년 9월 18일, 금융감독원은 2004년 국내 금융기관들의 수수료 수익이 총 10조 8,700여억 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금융산업의 전통적인 수익 모델인 예대마진(대출 이자 수익에서 예금 이자 비용을 뺀 금액)에서 벗어나,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탈(脫) 이자수익'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 시기는 은행과 보험 업계가 고객을 대상으로 한 금융상품 판매와 자산관리 서비스 등을 크게 확대하며 놀라운 성장을 기록한 때였습니다.배경: 금융산업의 새로운 수익원, 수수료과거 국내 금융기관들은 주로 대출과 예금의 이자 차이인 예대마진에 의존해 수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금융사들은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 ..

카테고리 없음 2025.09.18

1988년 9월 17일, 화합과 평화의 제전: 제24회 서울 올림픽 개막

1988년 9월 17일, 전 세계의 이목이 서울로 집중되었습니다. 동서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대, 대한민국 서울에서 제24회 올림픽 대회가 화려한 막을 올렸습니다. "화합과 전진"이라는 슬로건 아래 펼쳐진 이 대회는 동서 진영이 모두 참여한 냉전 이후 최초의 올림픽으로, 전 세계에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서울 올림픽은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배경: 냉전의 장벽을 넘어서1980년대는 미·소 양대 진영의 갈등이 첨예했던 시기였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각각 서방과 동구권의 불참으로 '반쪽짜리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서울이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것은 국제적인..

카테고리 없음 2025.09.17

1936년 9월 16일, 소설 '상록수' 작가 심훈 사망: 문학으로 독립을 노래한 투사

1936년 9월 16일, 대한민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소설가 심훈이 장티푸스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소설 '상록수'가 연재를 마치고 대중의 사랑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불과 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의 죽음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대에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꽃을 피워 올린 한 예술가의 마지막 투쟁으로 기억됩니다.심훈 작가 프로필본명: 심대섭 (沈大燮)호: 해풍(海風)출생: 1901년 10월 23일 (음력 9월 12일), 경기도 과천군 하북면 흑석리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사망: 1936년 9월 16일, 장티푸스로 사망주요 경력: 소설가, 시인, 영화감독, 언론인.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3·1운동 참여로 옥고를 치렀고,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

카테고리 없음 2025.09.16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 기적의 서막을 열다

1950년 9월 15일, 한국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집은 역사적인 군사 작전이 펼쳐졌습니다.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있던 그때, 유엔군과 국군은 '크로마이트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인천에 상륙하는 대담한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이 작전은 성공을 거두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해냈고,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배경: 절체절명의 위기와 대담한 작전 구상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 이후 대한민국 국군은 속수무책으로 후퇴를 거듭했습니다. 불과 석 달 만에 서울을 비롯한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이 북한군에 점령되었고, 유엔군과 국군은 한반도 남동쪽의 좁은 '낙동강 방어선'에 겨우 갇혀 방어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군사..

카테고리 없음 2025.09.15

1920년 9월 14일, 부산경찰서 폭탄 의거: 의열단원 박재혁의 투쟁

1920년 9월 14일, 일제강점기 무력 통치의 상징이었던 부산경찰서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의열단원 박재혁이 경찰서장실에 폭탄을 투척한 것입니다. 이 의거로 경찰서장 하시모토가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박재혁 의사는 심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항거하다 순국했습니다. 이 사건은 1920년대 초반, 무단통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독립운동의 불씨가 여전히 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박재혁 의사 프로필출생: 1895년 5월 17일,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사망: 1921년 5월 11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사망 원인: 옥중 단식 투쟁과 고문으로 인한 병사주요 활동: 의열단 단원,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주도배경: 일제의 무단통치와 의열단의 등장1919년 3.1운동 이..

카테고리 없음 2025.09.14

1996년 9월 13일, 아시아 영화의 축포를 쏘다: 제1회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

1996년 9월 13일, 대한민국 영화계에 새로운 역사를 쓴 기념비적인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제1회 부산 국제 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가 개막한 것입니다. 당시 PIFF라는 약칭으로 불렸던 이 영화제는 침체되어 있던 한국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부산을 단순한 항구 도시가 아닌 아시아 영화의 중심지로 변모시킨 혁명적인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그 첫 시작은 한국 영화의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힘찬 축포와도 같았습니다.배경: 한국 영화의 새로운 도약 준비1980년대와 90년대 초 한국 영화는 해외 영화, 특히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상업 영화 위주의 제작 환경 속에서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가 설 자리는 좁았고,..

카테고리 없음 2025.09.13

1916년 9월 12일, 나철 선생님의 순국: 민족의 정신을 지키다

1916년 9월 12일,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시기, 대종교의 교조였던 나철 선생님이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비통한 유서를 남기고 자결 순국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선택은 단순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일제의 무자비한 폭정에 대한 마지막 항거이자, 민족의 정신만은 결코 꺾이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보여준 순국이었습니다. 그의 희생은 이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무장 투쟁의 불씨를 지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나철 선생님 프로필본명: 나인영(羅寅永), 초명은 나두영(羅斗永)호: 홍암(弘巖)출생: 1863년 12월 2일, 전라도 낙안군 남상면 금곡리 (현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사망: 1916년 9월 12일, 황해도 안악군 구월산 삼성사종교: 대종교배경: 나철, 민족혼을 일깨..

카테고리 없음 2025.09.12

1980년 9월 11일, 정치 재판의 비극: 김대중 전 대통령 사형 구형

1980년 9월 11일, 육군본부 계엄 보통 군법 회의에서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김대중 피고인에게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내란 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가 적용된 이 재판은 당시 전두환 신군부 정권이 정적(政敵)을 제거하고, 5.18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려 했던 대표적인 정치 보복 재판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어떻게 법을 악용해 민주주의를 탄압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비극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김대중 전 대통령 프로필출생 및 사망: 1924년 1월 6일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태어나, 2009년 8월 18일 서울에서 서거했습니다.학력: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러시아 연방 외교 아카데미에서..

카테고리 없음 2025.09.11

1958년 9월 10일, 조소앙 선생님, 영원한 자유를 향해

1958년 9월 10일,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조소앙 선생님이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선생님은 일제강점기 동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독립의 염원을 세계에 알렸고, 광복 후에는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만들고자 노력했던 거인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서거는 단순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한평생 민족의 자유와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한 시대의 끝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조소앙 선생님 프로필이름: 조소앙(趙素昻), 본명은 조용은(趙鏞殷)출생: 1887년 5월 2일, 경기도 파주사망: 1958년 9월 10일, 평양의 한 병원학력: 성균관, 메이지대학 법학과 졸업주요 경력: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장, 국무위원 등 ..

카테고리 없음 2025.09.10

1970년 9월 9일, 주거 혁명의 시작: 한강 맨션 준공

1970년 9월 9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대한민국 주거 문화를 바꾼 기념비적인 아파트 단지가 탄생했습니다. 바로 한강 맨션입니다. 당시 아파트가 서민들의 주택난 해소를 위한 저렴한 주거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절, 한강 맨션은 최초로 '고급 아파트'라는 개념을 도입하며 새로운 주거 시대를 열었습니다. 특히, 한국 최초로 중앙식 지역 온수 난방 방식을 도입해 개별난방의 불편함을 해소하며 주택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배경: 서민 아파트의 시대와 새로운 수요1960년대 말까지 지어진 아파트는 대부분 급증하는 도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저렴하고 단순한 구조였습니다. 연탄을 때는 개별 난방 방식이 일반적이었고, 화재와 연탄가스 사고의 위험이 항상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로 접어들며 경제 성장과..

카테고리 없음 2025.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