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392년 음력 7월 17일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대변혁이 시작된 날입니다. 격동의 고려 말, 혼란스러운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왕조의 기틀을 다진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마침내 왕위에 올라 조선(朝鮮)을 건국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500년 고려의 역사는 저물고, 또 다른 500년 조선의 역사가 시작되는 장엄한 서막이 열렸습니다.
오늘은 1392년 음력 7월 17일, 태조 이성계의 즉위와 함께 조선이 건국된 그 역사적인 순간과 그 의미에 대해 함께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고려 말, 격동의 시대
고려 말기는 혼란과 변화의 시대였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원(元)의 간섭은 고려의 국력을 약화시켰고, 권문세족의 횡포는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여기에 북방에서는 홍건적, 남해안에서는 왜구의 침략이 끊이지 않아 백성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피폐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의 생존과 국가의 안정을 책임질 새로운 리더십이 절실했습니다. 이 시기에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등장한 이들이 바로 최영, 이성계와 같은 신흥 무인 세력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성계는 탁월한 무력을 바탕으로 왜구를 물리치고 홍건적을 격퇴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우며 백성들의 신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위화도 회군,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예고
이성계의 영향력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1388년, 우왕과 최영은 명(明)나라가 철령위(鐵嶺衛)를 요구하자 요동 정벌을 단행하려 했습니다. 이때 이성계는 '4불가론(四不可論)'을 내세우며 요동 정벌의 부당성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압록강 위화도에 이른 이성계는 결국 군대를 회군시켜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위시켰습니다.
위화도 회군은 단순한 군사적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고려 왕실의 권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이성계가 새로운 정치 세력의 실세로 부상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정도전, 조준 등 신진 사대부들은 신흥 무인 세력인 이성계와 손을 잡고, 기울어 가는 고려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였습니다.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우왕과 최영을 몰아내고 실권을 잡은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은 문란한 토지 제도를 바로잡고, 경제 기반을 다지기 위해 과전법을 실시하였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새 나라 건설을 반대한 정몽주 등을 제거하고, 마침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새 왕조를 세웠습니다(1392).
1392년 7월 17일 (음력), 조선의 건국
마침내 1392년 음력 7월 17일, 개경(開京) 수창궁(壽昌宮)에서 이성계는 고려 공양왕으로부터 선양(禪讓)을 받아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날 이성계가 옥새를 받고 면류관을 쓰고 즉위하는 모습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즉위는 단순한 왕위 교체가 아닌, 500년 고려 왕조의 종말과 함께 새로운 500년 왕조인 조선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새 왕조를 세운 세력은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습니다.
한양 천도
태조는 즉위 당시에는 개경을 그대로 수도로 삼으려 하였으나, 즉위한 지 한 달 만에 천도를 결심하고 후보지를 물색하여 1394년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한양은 고려 3경 중의 하나로 풍수지리설에서도 명당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전국을 통치하기 쉽고, 남쪽에 한강이 흐르고 있어 수로 교통이 매우 편리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에도 매우 유리하였습니다.
조선 건국, 새로운 역사의 시작
조선의 건국은 한반도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 새로운 이념의 확립: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와 달리, 조선은 철저히 성리학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아 사회 질서와 교육, 문화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 중앙집권 체제 강화: 권문세족의 횡포가 심했던 고려와 달리, 조선은 왕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여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 사회 개혁: 토지 제도 개혁(과전법)을 통해 권문세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키고 신진사대부의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는 등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조선은 이후 500여 년간 한반도를 통치하며 독자적인 문화와 예술, 과학기술을 발전시켰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392년 음력 7월 17일, 태조 이성계의 즉위는 고려의 혼란을 끝내고 새로운 질서를 세운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그의 건국 정신은 500년 조선의 기틀이 되었고,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태조 이성계와 조선의 건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새로운 왕조의 시작이 우리 역사에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공유해주세요.